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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No. 9
자다 일어나도 줄 탈 만큼 단련됐죠 2008-10-20
[문갑식 기획취재부장 gsmoon@chosun.com]

모든 게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은 세상이다. 진작에 외길 타는 팔자(八字)건만 재산 축나고 직장에서 쫓겨나 봐야 사람들은 칼날 위를 걷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는 걸 깨닫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곳간 그득하다며 배 두드리던 게 어제 같은데 오늘은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권원태(權元泰·41)는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32년째 살고 있다. 부모가 정해준 폭 3㎝ 공간에서 그는 남사당패 최고 줄꾼을 뜻하는 '어름산이'이자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 상임단원이 됐다. 2004년 미국 세계줄타기대회에서는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거의 매일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에는 하나같이 줄타기 공연이 들어있다. 이런 신드롬의 배경에도 그가 있다. 2005년 관객 1000만을 모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배우 감우성과 이준기의 대역(代役)을 한 후, 젊은이들 사이에 '우리 것 찾기'라는 폭풍을 일으킨 것이다.

나라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오던 6일에도 그는 한강시민공원 양화~망원지구에 걸쳐있는 1㎞ 줄을 홀로 걷고 있었다. 시퍼런 강물 위를 걷던 그는 길이 6m짜리 밸런스 봉(棒) 하나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 외줄에서 후들거리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연락을 취한 후부터 기자는 외줄 위에 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일 인천, 모레는 충주 하는 식이어서 시간이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10일 국립국악원 앞 광장에서 그를 만났다.



―원래 인터뷰를 싫어합니까.

"제가 고생한 부분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제가 이렇게 살았으니까 여러분도 힘 내십쇼 할 때가 지금은 아니지요. 왕년에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이 40 넘은 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자체가 웃기는 거잖아요."

―무척 바쁜 것 같은데 그렇게 공연이 많습니까.

"1년에 50회 이상은 넘는 것 같아요. 가을이어서 공연이 많지요. 공연은 보통 정월부터 시작해 11월까지 계속됩니다. 올해는 11월초에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연하는 게 마지막 일정입니다."

―작년에 한강에 걸려있는 1㎞ 줄을 17분7초 만에 건넜지요. 올해도 출전자 가운데 맨 먼저 건넜는데 줄의 굵기가 얼마나 됩니까.

"굵기는 3㎝ 되고 양쪽에서 당기는 장력은 35t입니다. 강에 걸쳐 있기 때문에 포물선 형태가 되는데,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해요. 이번에 각국에서 서커스 하는 사람들도 왔는데 이런 대회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2004년에 미국에서 열린 줄타기대회는 이번과 다른가요.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바로 옆 작은 도시에서 열린 대회인데 길이 50m 줄을 걷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18초 만에 건넜지요. 한강과는 규모부터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체조경기의 평균대 위만 걸어도 어질어질한데 퍼런 강물을 보며 걷는 걸 보면 담력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겁이 없는 건 아니고요, 30년씩 줄을 탔기 때문에 어지럽거나 그런 건 없고 편안하지요. 다만 바람이 세게 불면 휘청거릴 때가 있지요. 그럼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위험하기는 합니다."

―줄 위에서 편안하면 공연할 때 관객들의 표정이 보이나요? 남사당 공연 때는 줄 길이 9m에 높이는 3m라고 하던데요.

"과장하면 지금은 개미가 지나가는 것도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시키는 것만 하다 보니 그런 여유가 없었지만요. "

―그러면서 재담(才談)까지 하지요.

"줄 타면서 재담을 30분에서 1시간까지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관객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관객들은 '저 사람이 줄에서 뭐를 할까'하고 기대하잖아요. 그 욕구를 어떻게 채워주느냐가 능력입니다."

―재담을 매번 바꿀 수는 없지요.

"기본 뼈대는 있는데 거기다 살을 조금씩 붙이는 거죠. 현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 이야기만 하면 관객들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관객들과 같이 대화를 해 가면서 해야지요."

―그렇게 열심히 신경 써서 하는데 관객들이 딴청부리면 화가 나겠군요.

"관객들이 떠든다고 줄타기에 영향을 받거나 그렇지는 않고요. 그 분들도 분위기에 취해야 호응을 해주는 거니까요."

―공연이 없는 날도 줄타기 연습을 합니까.

"공연 없는 날은 줄은 안 탑니다. 연습을 해야 하는 단계는 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공연할 때와 연습할 때의 긴장감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연습 10번보다 공연 한번이 훨씬 중요하지요.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기에 몸을 맞춰 나가는 것과 똑 같아요. 저는 자다가 일어나도 줄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돼 있습니다."

―몇 년 전 공연 중 추락해 크게 다친 적이 있지요?

"공중으로 2m쯤 점프했을 때 갑자기 땅에 박힌 말뚝이 모두 뽑히면서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어요. 치료하고 쉬는 데 6개월쯤 걸렸습니다. 기본적인 설치가 완벽하면 공연은 50%쯤 성공하게 돼있습니다. 나머지 30%가 날씨, 20%가 제 능력입니다. 그 셋 중 뭐 하나만 조금 잘못돼도 그런 일이 생깁니다. 사실 다친 이야기는 잘 안 하려 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다친 일을 자꾸 생각하면 몸이 경직돼요. 빨리 잊어야 하는데 되새기다 보면 줄을 탈 수 없습니다."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난 권원태는 5남매의 장남이다. 광대(廣大) 출신인 부모는 그가 9살이 되자 무작정 '예술단'에 집어넣었다. 말이 좋아 예술단이지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인 것이다. 지금 꽤 유명해졌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한 적이 없다.

기자는 눈빛 강한 그가 상당히 고집이 센 인물임을 직감했다. 이럴 때 취재하는 쪽과 취재 당하는 쪽은 언젠가 나올 질문이 어떤 형태로 나올 것인가에 바짝 신경을 쓰게 된다. 낚시할 때와 비슷한 밀고 당기기인 것이다. 이럴 때는 시침 뚝 떼고 푹 찔러보는 게 상책일 때가 있다.

―줄타기에 입문한 이야기를 거의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것을 제가 밝히기는 좀 그래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한 게 아니라 어른들의 강요로 지금까지 온 건 사실이죠. 당시는 어른들의 말이 법(法)이었잖아요."

―많이 맞으면서 배운 모양입니다.

"당시의 구타는 지금의 구타와 개념이 달라요."

―언제부터 줄타기가 내 운명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나요.

"20대 후반이었죠. 경제적으로 가난했어요. 광대들 집안에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어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줄타기를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거죠. ' 아! 내가 이걸 해야 되는구나'하고요."

―어릴 때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줄을 탈 때도 있었지요. 너무 공포가 심해 옆에 공룡(恐龍)이 지나가도 모를 만큼 집중했지요. 줄밖에 안 보였으니까요. 처음 줄 탈 때 느낌이요? 그냥 캄캄했어요."

―강제로 시작해도 세월이 흐르면 명인(名人)이 될 수 있다고 봅니까?

"연륜은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지요. 강제로 시작했어도 제가 받아들였고 그후부터는 '이거구나'하는 느낌이 옵니다. 그 다음에는 컨디션 조절이 저절로 됩니다. 줄타는 겉모습이 좋다고 잘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줄이 진짜 재미있다고 느끼려면 30년은 넘어야 하지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 시기가 다르지만요."

―언제까지 줄타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

"선배님들 중에는 육십 넘게 하신 분도 있고 칠순 돼서도 줄에 올라가신 분들이 있지요. 그 때는 줄 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자체로도 대단한 겁니다. 줄타기가 사실 스포츠와 비슷해요. 나이 들면 힘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저도 오래하고 싶지만 나이를 딱 짚지는 못하겠습니다."

―줄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금기(禁忌)가 있습니까.

"제가 하늘을 날며 살잖아요. 평상시 육식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개고기 같은 것이나 특히 날짐승은 안 먹고 나물을 좋아하지요. 장난 비슷하게 날짐승을 괴롭히는 것도 피하지요. 저는 몸으로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술도 안 마십니다. 술자리에 어울리기만 해도 다음날 피곤해지니까 공연 전에는 정해진 숙소에서 그냥 누워 쉽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탯줄을 끊고 죽을 때 칠성판에 줄로 매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줄타기의 명인이 되다 보니 줄로 인생을 설명할 경지에 이른 겁니까?

"제 이야기 다 맞잖아요. 우리 인생이 다 줄이잖아요. 태어날 때 죽을 때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줄을 서야 하지 않습니까. 인생의 줄에 잘못서면 낙오자가 되기도 하지요."

―IMF 때 사업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뭔가요.

"제가 직접 사업을 한 건 아니고요, 간접투자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잘못돼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제2의 IMF가 온다'느니 세계경제가 동시 불황(不況)에 접어들었다느니 하는 말들이 많지요.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있는데 평생 줄 위에서 공포를 느낀 사람으로서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 순리(順理)를 어겨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나는 자연재해도 다 자연의 섭리를 어길 때 일어나잖아요. 그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놔두면 괜찮을 텐데…. 경제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도 순리대로 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제를 살리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걸 바로 잡겠다고 무리(無理)를 하면 자꾸 위기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아닌가요?"

―경제위기가 오면 문화예술계에도 좋지는 않지요?

"문화예술 하는 사람들한테는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어요. 먹고 자고 차(車)를 움직이는 건 필연적인 거지만 문화예술은 경제가 어렵고 힘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주머니가 넉넉해야 공연도 보러 오는 것이지요."

2005년은 권원태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해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날렵하게 줄을 타는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의 '몸'이 사실 그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사당 풍물패 권원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관심은 우리 전통문화가 르네상스를 맞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역시 "그 영화 이후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통놀이, 풍물, 국악, 사물놀이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개념이 깨졌다"며 "그 영화 이후 유치원생들도 우리 전통놀이를 즐기게 됐다"고 했다. 그는"평상시는 모르지만 줄타기 의상만 입으면 사람들이 저를 다 알게 됐다"는 말도 했다.



―당시 제작사에서 왜 권원태씨를 출연시켰다고 봅니까.

"수억원을 투자한 영화니 그쪽(제작사)에서도 알아볼 만큼은 알아 봤겠죠. 지금 저처럼 줄타는 사람이 모두 8명인데 제가 이야기할 수는 없지요."

―모든 동작을 다했습니까.

"줄타기 동작은 제가 다 했지요. 나머지는 연기자들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 같은 걸 했고요."

―영화 출연은 처음일 텐데 혹시 NG를 낸 적은 없습니까.

"그냥 한번에 저는 제 역할만 해주고 내려오면 되니까 NG는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세팅을 해놓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했어요."

―그 영화가 있기 1년 전인 2004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초청공연을 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30대 후반에 대운(大運)이 찾아올 운명이었던 같은데 우리 하늘을 걷는 것과는 느낌이 다른가요?

"여러 나라에 가봤어요. 스페인, 독일, 그리스, 중국, 일본…. 외국의 하늘이라고 우리와 다를 바는 없지만 프랑스가 참 좋았어요. 파리 같은 대도시 말고 소도시도 다녔는데 그 풍경이며 공기가 참 다르더군요. 그렇지만 역시 공연 분위기는 우리나라 궁궐(宮闕)에서 하는 게 최고지요. 저도 경복궁 같은 곳을 제일 좋아하고요."

―외국인들이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공연 내용을 이해합니까?

"팬터마임 식이지만 몇 마디는 영어로 하지요. 콩글리시이긴 하지만요. 바디 랭귀지 하면서 관객 표정을 보면 다 알아듣겠다는 듯이 웃곤 해요. 몸짓이라는 게 세계 공통인 모양입니다. '한국에도 저런 전통문화가 있구나'하는 그들의 표정을 볼 때는 뿌듯해지죠."

―외국에도 줄타는 공연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서커스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요.

"그 줄은 우리와 다른 쇠줄이지요. 줄을 탈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 스타일로 줄은 못 탄다고 하는 게 옳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하게 됐다'는 영국 시인 바이런의 말이 있지요. '왕의 남자' 이후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전통놀이가 새롭게 부각되는 걸 보니 '왕의 남자'에게 문화예술계에서 상을 줘야 하죠. 대작이면 더 좋겠지만 사극 같은 데도 자주 우리 전통놀이가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전통놀이를 현대적 감각에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젊은 친구들이 전통놀이를 하며 어떻게 힘들게 하고 살아 가는지 라는 측면에서 드라마를 꾸미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유명인이 되면서 수입도 늘었겠지요.

"그 전보다는 올랐지만…. 그런데 이게 그래요. 신인배우는 영화에서 한번 히트 치면 개런티가 많이 오르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출연료를 올리려면 인정을 안 해요. '왜 이렇게 비싸?'하는 식이죠.

―회당 공연에 얼마씩 받습니까. 제가 금액은 공개 안 할게요.

"(액수를 알려준 뒤) 왕의 남자 이후 두 배 올랐다는 게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제 몫이 아니거든요. 달려있는 식구가 저 포함에서 8명인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풍토의 문제죠. 가수도 노래 두 세곡 하고 얼마를 받는데 우리는 한번 공연이 30분에서 많이 하면 1시간도 하는데 너무 형편 없어요. 그리고 이건 꼭 써주세요."

―뭡니까.

"제가 줄타기 하면서 보험을 들려 하니 안 들어 줘요. 어느 방송에서 이 이야길 하니 한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가입시켜주겠다고. 보상액을 들어보니 너무 형편이 없어서 그만 뒀어요. 외국에는 유명 스포츠스타, 거 누구냐 베컴 같은 사람 '다리 하나에 얼마'하는 보험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요."

권원태는 대화하면서 한번도 웃지 않았다. 인터뷰 중 자주 통화하고 오가는 국악인을 보면"저 분 아시죠? 우리 고수(鼓手)계의 대가(大家)인데…"하는 식으로 말을 끊기 일쑤였다. 그는"인터뷰가 이렇게 길 줄 몰랐는데"라고도 했다. 기자의 입과 손은 실로 몇 년 만에 초스피드로 움직였다.

―평소 잘 웃지 않습니까.

"저 활달한 편인데요. 잘 웃고 화도 잘내고 다혈질이긴 합니다만."

―인간관계에서 권원태는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까.

"눈썹이 진해서 묵묵히 있으면 성질이 고약해 보이죠. 저는 사람이 한번 싫어지면 영원히 싫어하는 스타일입니다. 인간관계에는 신의와 예의가 중요하잖아요. 그렇지만 꿍 해있지도 않습니다. 화해를 청해 오면 풀죠."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본 권원태씨의 인생이 그리 유쾌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병(病)으로 몇 년 전 사망했어요.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공연 때문에 못 가고 마지막 염(殮)하는 것도 보지 못했어요. 겨우 발인하는 날 가봤어요. 공연 때문이었어요. 공연 없을 때 이틀 동안 울고 공연 때는 관객들을 웃기고…. 그런 게 광대 짓이 아닌가 합니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예(技藝)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대단하다는 걸 그때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방송이 되었건 뭐건 간에 마찬가지잖아요. 남을 위해, 대중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개인생활에서는 굉장히 스트레스 받지요. 일을 하고 싶어도 일 할 자리가 없어서 자살하고 생활고를 비관해 또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같은 사람은 거기 비하면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럴 때 누구에게 위로 받습니까. 가족입니까?

"아내는 제가 집을 자주 비우거나 들어와도 매일 밤늦게 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걸 싫어하죠. 딸 둘이 13살, 7살인데 아무래도 둘째가 저를 반겨주죠."

―키가 167㎝에 61㎏이라는데 저처럼 80㎏ 넘는 뚱보는 줄타기를 할 수 없겠죠?

"줄타기 하는 분들의 체구는 천차만별입니다. 뚱뚱하다고 줄을 못 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가벼워 줄에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가지만 덩치 큰 사람은 저보다는 스케일이 커 보이겠죠. 그 사람만의 능력이 있는데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단정짓기는 힘들죠."

기자는 그와 헤어지기 전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 기자가 "줄타는 사람의 몸은 어떤지 좀 만져보자"고 하자 그는 "제 배의 왕자(王字)같은 걸 본 적이 없을걸요?"라고 했다. 점프할 때마다 호흡을 멈추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근육이었다.

기자는 그의 웃옷을 걷어 올리고 그의 배 근육을 만져봤다. 지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찰고무 같은 근육이었다. 기자가 그 배를 만지는 장면을 동행한 사진기자가 촬영할 때 그는"아유? 기분 이상하게 왜 자꾸 만져요"하면서 몸을 뒤틀더니 흐흐흐 웃었다. 2시간 만에 처음 보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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